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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다국적 기업 지사장으로 산다는 것은…


다국적 기업 지사장으로 산다는 것은…


[김경묵의 인물탐구-7] 김경진 한국EMC 사장

대담=김경묵 지디넷코리아 편집국장, 정리=황치규



한국 IT시장은 이젠 별 매력이 없다. 성장세도 고만고만해 졌고 자랑하던 테스트베드역할도 예전만 못하다. 한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 자리는 더이상 우리의 몫이 아니다. 지금은 ‘친디아‘가 대세다. 투자의 핵심인 연구개발(R&D)센터 설립이나 조인트벤처 모두 온통 중국과 인도에 몰려 있다. 숫자에 밝은 글로벌기업들은 친디아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투다.


이 때문인지 글로벌 기업 본사가 한국 지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야말로 변방(One of Them) 수준이다. 조금 심하게 얘기하면 “일벌리지 말고 하던거나 잘해라” 정도로 느껴진다.


그렇다고 그냥 가만이 있을 수도 없는게, 글로벌 기업 국내 지사다. 본사에서 요구하는 숫자는 철 저하게 맞춰야 한다. 못맞추면 잘릴 가능성이 높다. 지사장들은 특히 그렇다. 성장은 예전같지 않고 본사는 계속해서 숫자로 쪼고, 본사에 한국 상황을 이해좀 해달라고 하면 ‘그런게 어딨어‘라는 대답이 돌아오고…그러다보니 술자리에서 “정말 못해먹겠다“고하는 장면도 연출된다.


실적에 대한 압박과 조직관리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 따른 긴장감은 회사원이면 누구나 받는 스트레스일 것이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 지사장의 경우는 성격이 좀 다를 수 있다. 문화가 다른 본사와 한국적 상황 사이에서 그때그때 ‘힘조절‘을 잘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는 않다. 힘조절 때문에 사고가 수시로 터진다. 이쯤되면 다국적 기업 지사장들은 종종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김경진 한국EMC 사장을 만나러가면서 이런 생각들이 계속 머리를 스쳤다. 그가 한국EMC 지휘봉을 잡은지는 올해로 7년째다. 마케팅과 영업 총괄 임원 경력까지 합치면 10년이 넘었다. 미국 동부의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가진 EMC에서 10년이 넘게 있었다는 것은 그가 본사를 상대로한 커뮤니케이션과 내부 조직 관리 면에서 어느정도 내공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8년 아태지역 출신 임원 최초로 본사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본사 차원에서 그를 변방국가 지사를 이끄는 단순한 영업맨으로만 생각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런만큼 그에게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본사와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하는지, 나름 노하우는 무엇인지, 다국적 기업 지사장으로 요즘 드는 생각들은 무엇인지, 또 어떤 경영 철학을 갖고 있는지 등 다국적 기업 지사장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비춰주는 것도 사업 얘기 못지 않게 의미있는 인터뷰가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복잡한 이해관계, 소셜 센서빌러티를 키워라

한국EMC가 본사에 던지는 메시지는 나름 설득력을 갖는다. 본사가 시키는대로만 하는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스토리지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천만의 말씀이다. 스토리지라고 해서 다른 IT분야와 다를게 없다. 성장은 답보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EMC 본사가 한국에서 올라오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본사와 커뮤니케이션할때 반발 정도 앞서가려고 하는 편입니다. 본사에서 이런거 이렇게 해라는 메시지가 내려올때가 많아요. 그런데, 그게 도저히 한국과는 안맞을때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안된다고는 못하죠. 일단 한다고 한 뒤 상황봐서 나중에 우리 입장을 설명하거나 아니면 어떤 메시지가 내려오기전에 본사에 먼저 우리 얘기를 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이지만, 글로벌 기업 국내 지사는 이렇게 해야 된다고 봐요.”

김 사장에 따르면 본사가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한다고 해서 욱하는 마음에 그 자리에서 ‘노‘(NO)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득보다는 실이 많다. 그렇다고 한국 입장만 너무 내세우거나 안되는거 뻔히 알면서 무턱대고 ‘오케이‘해서도 안된다. 나중에 더 곤란해질 수 있다. 결국 ‘노‘와 ‘예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데, 이러려면 고난도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요구된다.

김경진 대표는 이를 ‘소셜 센서빌러티‘(사회적 감각)로 요약하는데, 한마디로 ‘눈치‘가 빨라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회사라는게 정치판과 본질적으로 다를게 없어요. 기업이나 정치 모두 견제와 파워 사이에서 균형이 만들어지는겁니다. 개인적으로 봤을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소셜 센서빌러티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다른 사람과 권력간 관계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거죠. 관찰한 결과를 갖고 자신과 조직을 바꿀 수 있는 추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리더의 기본이에요.”

거룩한(?)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김 사장에게 소셜 센서빌러티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엄청난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그의 얘기는 계속된다.

“어떤 상황에 대해 눈치를 챘다고 해요. 문제를 풀려면 행동을 해야 하는데 막가파처럼 정면돌파하는 방법이 있고, 적당히 감춰가면서 대응하는 경우도 있어요. 균형을 먼저 찾은 뒤 문제 해결에 나서는 거죠. 사회적으로는 후자가 잘 통해요. 소셜 센서빌러티를 갖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 봅니다. 이것만 갖춰도 리더가 되는데 큰 문제는 없다고 봐요.”

김경진 사장은 스스로도 소셜 센서빌러티를 키우기 위해 공을 들인다. 일정부분 내공을 갖췄다는 표정도 엿보인다.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소셜 센서빌러티를 강조했다. 효과는 크다. 조 투치 회장을 비롯한 EMC 본사 의사 결정권자들은 김 사장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란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상사에게 처세를 잘하는 사람이군…” 김 사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에겐 ‘소셜 센서빌러티‘는 아부가 아니라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어려운 전략이다. 이걸 못해 낙마하는 글로벌 기업 지사장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물론 소셜 센서빌러티가 리더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김 사장에게 소셜센서빌러티만 갖춘 사람은 중상위권 리더로 비춰진다. 최상급 리더가 되려면 또 하나의 ‘필살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패러다임을 한번에 바꿀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소셜 센서빌러티와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직관 그리고 비전 제시 능력을 갖추면 ,가히 ‘천하무적‘이다.

김 사장에게 “스스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직관을 갖췄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로망으로 남아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직관으로 문제를 해결할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에 그는 어떤 문제을 만나면 상황을 쪼개고 철저하게 분석한 뒤 결론을 내리는 스타일을 추구한다.


계속 소셜 센서빌러티 얘기다. 소셜 센서빌러티는 김 사장의 조직 관리 스타일과도 밀접한 함수관계다. 혹시 센서빌러티에 담긴 왠지 따뜻할 것 같은 느낌만 보고 김 사장이 가족같은 기업 문화를 만드는데 관심이 있을거라 봤다면 생각을 바꾸는게 좋을 것 같다. 김 사장이 추구하는 조직론에 가족 문화가 파고들 공간은 별로 없어 보인다.


조직 관리에 있어 김 사장은 다소 냉정한 유형으로 분류된다. 경영자로서 그는 직원들을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인정한다. 이게 단점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고칠 생각도 없는 듯 하다. 오히려 가끔은 남을 배려하지 않는게 가장 효율적일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솔직한 자기 평가가 아닐 수 없다. 빈말이라도 거룩한 얘기좀 하는게 나쁘지는 않을텐데…


“아랫사람을 다루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죠. 설득도 하고 빌기도 해야 하지만 눌러줄 필요도 있어요. 화를 내는 것도 경영의 한 방법입니다. 물론 화를 자주 내서는 안되죠. 그러나 가끔씩 화를 냄으로써 경고를 주는게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의 조직론은 철저하게 조직의 건강한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과 ‘사‘도 분명하게 구분된다. 좋은 사람이란 평가를 듣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자신이 왜 한국EMC 사장으로 있느냐?란 질문에서 출발한다.

“장기적으로 회사가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해주는게 중요합니다. 제가 EMC에서 영원이 있을 것처럼 생각하면서 결정을 내려요. 그렇기 때문에 ‘사‘를 철저하게 배제합니다. 누군가를 평가할때도 그 사람의 능력과 업적 그리고 가능성만 본다는게 개인적인 철학입니다. 투명성도 중요하죠. 제가 내리는 결정은 구성원 모두가 그 과정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알면 안되는 것 말고는 다 공개하는게 맞다고 봐요.”

한국EMC에서 김경진이라는 인물은 사장으로서 김경진일 뿐이다. 사장 김경진이 인간 김경진을 대변할 수는 없다.

“저는 관찰자에요. 일하면서 자제력을 잃은적이 거의 없어요. 화내는 것도 연기하는 거에요.(웃음) 소셜 센서빌러티에서 제 자신의 본 모습은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리더는 조정자일 뿐입니다. 개인적인 모습은 일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들과 있을때 보여주는 거죠. 회사에서는 비즈니스 목표를 이루는 것만 고민합니다.”

‘철두철미‘라는 문구는 이럴때 쓰라고 나온것이지 싶다. 사회적 위치와 개인적인 성향을 물과 기름처럼 가르는게 쉽지는 않은 법인데, 그는 일을 하는데 있어 고도로 계산된 플레이를 즐기는(?)것 같다. 이메일을 쓸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구에 대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100번도 넘게 고민하고 쓴단다.

너무 냉정하게 비춰지는게 부담스럽지 않은지 물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먹이기 위해 닭을 잡았다고 쳐요. 닭 입장에서 보면 무서운 사람이지만, 아이에게는 닭을 먹여주는 따뜻한 엄마가 아닐까요?”

듣다보니 김경진 사장의 스타일은 앞으로도 안바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격동의 컴퓨팅 시장, 그리고 EMC의 변화

글로벌 IT시장이 다시 격변기에 들어섰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모든 것은 클라우드로 통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클라우드의 부상과 함께 업체간 역학 관계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 컴퓨팅을 지배해온 IBM과 HP는 물론 시스코시스템즈, 오라클과 같은 신흥강호들이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서 맹주를 자처하고 나섰다.

EMC도 그중 하나다. EMC는 시스코와의 전략적 제휴를 기반으로 클라우드 시대를 주도하는 강력한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청사진을 내걸었다. 스토리지 강자로만 머물지 않겠다는 것이다. 몇년전부터 EMC가 연쇄적인 인수합병(M&A) 레이스에 들어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경진 사장은 최근의 IT업계 상황을 수직 계열화 시대의 부활로 규정한다.

“IBM, HP같은 거대 IT기업들이 공격적인 M&A를 통해 제품부터 서비스까지 다하겠다고 나왔습니다. 한마디로 한 업체에서 다 사가라는거죠. 80년대말 사라졌던 수직 계열화가 부활하고 있는 겁니다.”

수직 계열화는 80년대까지 IT업계를 지배하는 코드였다. 독자적인 칩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네트워크 기술로 중무장하고 고객들에게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은 70년대까지 컴퓨팅 업계에서 필승카드로 통했다.

그러나 PC가 나오면서 수직 계열화는 과거의 유물이 됐다. 그리고 분야별로 최고의 솔루션을 골라쓰는 베스트 오브 브리드(Best of Breed) 시대가 열렸다.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SAP, 피플소프트, BEA시스템즈, 로터스 등은 전문성을 앞세워 고객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운영체제와 서버 프로세서도 전문업체들의 손에 주도권이 넘어갔다. 이후 분야별로 강자들이 공존하는 이른바 ‘군웅할거의 시대‘가 20년넘게 지속됐다.

그러나 요즘에는 다시 수직계열화가 주도권을 틀어쥐는 양상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서버나 스토리지는 재료일 뿐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통합된 서비스만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IT기술이 이제 초성숙단계에 접어들었어요. 작은 혁신은 있겠지만 가상화 기반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IT자원도 마치 전기공급하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할 만큼, 기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성숙기에 들어섰습니다. 큰 업체 입장에서 보면 외부 전문 업체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거에요. 혁신이 한창 일어날때는 직접 하면 리스크가 많이 따랐습니다. 직접 선보인 기술이, 대세가 되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죠. 그러나 혁신의 폭이 크지 않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직접하는데 따른 위험이 크지 않아요. 그러니까 대형 업체들이 M&A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겁니다.”

김경진 사장은 수직 계열화를 향한 흐름은 앞으로 10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시장에서 ‘마지막 물결‘이 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10년후에는 2~3개 업체만 남을 것이며 정리된 판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EMC도 ‘마지막 물결‘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런만큼, 마지막 전쟁의 결승에 오르고 싶어한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알죠. IBM이나 HP가 들으면 웃겟지만 10년전에 구글이 이렇게 될줄 누가 알았습니까? 게임은 아직 끝난게 아니에요. 2~3년안에 진검승부가 펼쳐질 겁니다.”

화가를 꿈꾼 공고생 김경진

찬바람 풍기는 소셜 센서빌러티라는 말은 빼고 이제 인간 김경진에 대해 말할때가 된 것 같다. 그의 어린시절은 경제적으로 불우했다. 대학에 들어갈때까지 쭉 그랬다.

아버님이 중학교 1학년때 돌아가시다보니 먹을것을 걱정하며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공부는 매우 잘했지만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에 들어가는 꿈을 꿀 처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학업에 대한 열정 만큼은 대단했던 것 같다. 그는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며 올라가지 못할 나무에 오르려 했다. 집안 형편과 상관없이 서울고등학교에 지원한 것.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지만 합격 통지서까지 받았다.


꿈의 유효기간은 거기까지였다. 붙었지만 입학금이 없었다. 주변에서 돈을 내줄 상황도 못됐다. 대신 그는 공업고등학교를 선택했다. 공고는 공부 잘하면 등록금 안내도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죠. 고등학교 졸업해서 돈을 버는게 최우선 목표였어요. 당시에는 정부 차원에서 전자 산업을 키울때였습니다. 취직이 잘될꺼 같아 전자과에 들어갔죠.”


공고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손재주가 있다보니, 전자회로나 진공관 만지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세계 기능 선수권 대회에 출전할 후보로도 뽑혔다. 재미도 있고, 학교에서도 밀어준다고 했으니 세계 대회에 나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나가서 상만 타면 대기업 취직은 보장됐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때인 것 같아요. 어느날 갑지가 평생을 기능인으로만 살 수 있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어요. 며칠을 고민했죠. 당시에는 형들도 제대를 해서 밥을 안굶어도 될 때였어요. 결국 대학을 가기로 결정했죠. 그랬더니 학교에서 난리가 난거에요. 저한테 투자한게 얼마인데 하면서 세계 대회 출전을 권유했어요. 제가 고집이 센가봐요. 뜻을 꺾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대책이 있는것도 아니었어요. 그전까지 대입 준비를 한것도 아니었고요. 3학년때 참고서 몇권 사놓고 공부를 시작했고, 항공대에 들어간 겁니다.”


김경진 사장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했다. 자아가 강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들어갈때도, 대학 들어갈때도 모든 것을 혼자 결정했다. 스스로 내린 결정에 후회는 없다. 결과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가 세계 기능 대회에 출전해서 상을 탔다면 지금의 한국EMC 사장 김경진은 없을지도 모른다. 유능한 기술자로 은퇴했거나 정년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결정을 혼자서 내렸고 거기에 후회도 없지만 아쉬움이 생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막연하게나마 화가가 되는 것을 꿈꿨다. 그림 그리고 나무 깎고 조각하고 하는게 너무 좋았단다. 소질도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탁월한 손재주를 뽐낼 수 있었던 것도 미술에 대한 자질과 무관치 않다. 남들도 인정할 정도였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날, 그는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호출을 받는다. 가서 들어보니 “도와줄테니까 미대에 가라“는 거였다. 솔직히 가고 싶었기에, 진지하게 고민했단다. 그렇지만 미대가 돈이 한두푼 들어가는 곳인가?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사실은 나중에 후회했어요. 제일 좋아하는게 그거였는데… 지금 성격같으면 갔을거에요. 대학가서 아르바이트하면 되는거죠. 그 당시엔 미대에 갈만큼 무자비한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던거같아요.(웃음)”

김경진 사장에게 성공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경제적 부담없이 죽을때까지 하는 것이다.


그의 향후 목표는 대단한게 아니다. 은퇴한 뒤 그림 그리고 조각을 하면서 살고 싶어한다. 명성이나 돈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어린시절의 꿈을 복원해보고 싶다는 바람일 뿐이다.


젊은이들을 상대로 소셜 센서빌러티를 가르쳐주는 교육도 하고 싶단다. 소셜 센서빌러티가 너무 약해 일을 그르치는 것을 너무 많이 봤다는 이유에서다. 소셜 센서빌러티만 있어도 한국의 젊은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지금까지 얼마의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은퇴 후 그림 그리고 조각하고 젊은이들에게 소셜 센서빌러티를 가르쳐주면서 살아도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을 만큼의 돈은 벌었을 것 같다. EMC 본사에서 부사장급이니 그 정도 월급은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경진 사장은 어느정도 성공한 삶에 가까워졌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2020년께, 김경진 사장과 전원 주택앞에서 소셜 센서빌러티나 IT 얘기가 아니라 사회와 인간, 그리고 예술을 놓고 차한잔 마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김경묵의 인물탐구-7] 김경진 한국EMC 사장

대담=김경묵 지디넷코리아 편집국장, 정리=황치규



한국 IT시장은 이젠 별 매력이 없다. 성장세도 고만고만해 졌고 자랑하던 테스트베드역할도 예전만 못하다. 한 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 자리는 더이상 우리의 몫이 아니다. 지금은 ‘친디아‘가 대세다. 투자의 핵심인 연구개발(R&D)센터 설립이나 조인트벤처 모두 온통 중국과 인도에 몰려 있다. 숫자에 밝은 글로벌기업들은 친디아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투다.


이 때문인지 글로벌 기업 본사가 한국 지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야말로 변방(One of Them) 수준이다. 조금 심하게 얘기하면 “일벌리지 말고 하던거나 잘해라” 정도로 느껴진다.


그렇다고 그냥 가만이 있을 수도 없는게, 글로벌 기업 국내 지사다. 본사에서 요구하는 숫자는 철 저하게 맞춰야 한다. 못맞추면 잘릴 가능성이 높다. 지사장들은 특히 그렇다. 성장은 예전같지 않고 본사는 계속해서 숫자로 쪼고, 본사에 한국 상황을 이해좀 해달라고 하면 ‘그런게 어딨어‘라는 대답이 돌아오고…그러다보니 술자리에서 “정말 못해먹겠다“고하는 장면도 연출된다.


실적에 대한 압박과 조직관리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에 따른 긴장감은 회사원이면 누구나 받는 스트레스일 것이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 지사장의 경우는 성격이 좀 다를 수 있다. 문화가 다른 본사와 한국적 상황 사이에서 그때그때 ‘힘조절‘을 잘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는 않다. 힘조절 때문에 사고가 수시로 터진다. 이쯤되면 다국적 기업 지사장들은 종종 살얼음판을 걷는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김경진 한국EMC 사장을 만나러가면서 이런 생각들이 계속 머리를 스쳤다. 그가 한국EMC 지휘봉을 잡은지는 올해로 7년째다. 마케팅과 영업 총괄 임원 경력까지 합치면 10년이 넘었다. 미국 동부의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가진 EMC에서 10년이 넘게 있었다는 것은 그가 본사를 상대로한 커뮤니케이션과 내부 조직 관리 면에서 어느정도 내공을 갖췄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8년 아태지역 출신 임원 최초로 본사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본사 차원에서 그를 변방국가 지사를 이끄는 단순한 영업맨으로만 생각치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그런만큼 그에게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본사와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하는지, 나름 노하우는 무엇인지, 다국적 기업 지사장으로 요즘 드는 생각들은 무엇인지, 또 어떤 경영 철학을 갖고 있는지 등 다국적 기업 지사장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비춰주는 것도 사업 얘기 못지 않게 의미있는 인터뷰가 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복잡한 이해관계, 소셜 센서빌러티를 키워라

한국EMC가 본사에 던지는 메시지는 나름 설득력을 갖는다. 본사가 시키는대로만 하는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스토리지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에? 천만의 말씀이다. 스토리지라고 해서 다른 IT분야와 다를게 없다. 성장은 답보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EMC 본사가 한국에서 올라오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본사와 커뮤니케이션할때 반발 정도 앞서가려고 하는 편입니다. 본사에서 이런거 이렇게 해라는 메시지가 내려올때가 많아요. 그런데, 그게 도저히 한국과는 안맞을때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안된다고는 못하죠. 일단 한다고 한 뒤 상황봐서 나중에 우리 입장을 설명하거나 아니면 어떤 메시지가 내려오기전에 본사에 먼저 우리 얘기를 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이지만, 글로벌 기업 국내 지사는 이렇게 해야 된다고 봐요.”

김 사장에 따르면 본사가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한다고 해서 욱하는 마음에 그 자리에서 ‘노‘(NO) 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득보다는 실이 많다. 그렇다고 한국 입장만 너무 내세우거나 안되는거 뻔히 알면서 무턱대고 ‘오케이‘해서도 안된다. 나중에 더 곤란해질 수 있다. 결국 ‘노‘와 ‘예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데, 이러려면 고난도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요구된다.

김경진 대표는 이를 ‘소셜 센서빌러티‘(사회적 감각)로 요약하는데, 한마디로 ‘눈치‘가 빨라야 한다는 것이다.

“글로벌 회사라는게 정치판과 본질적으로 다를게 없어요. 기업이나 정치 모두 견제와 파워 사이에서 균형이 만들어지는겁니다. 개인적으로 봤을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소셜 센서빌러티가 있는 사람들이에요. 다른 사람과 권력간 관계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거죠. 관찰한 결과를 갖고 자신과 조직을 바꿀 수 있는 추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리더의 기본이에요.”

거룩한(?)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김 사장에게 소셜 센서빌러티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엄청난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그의 얘기는 계속된다.

“어떤 상황에 대해 눈치를 챘다고 해요. 문제를 풀려면 행동을 해야 하는데 막가파처럼 정면돌파하는 방법이 있고, 적당히 감춰가면서 대응하는 경우도 있어요. 균형을 먼저 찾은 뒤 문제 해결에 나서는 거죠. 사회적으로는 후자가 잘 통해요. 소셜 센서빌러티를 갖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 봅니다. 이것만 갖춰도 리더가 되는데 큰 문제는 없다고 봐요.”

김경진 사장은 스스로도 소셜 센서빌러티를 키우기 위해 공을 들인다. 일정부분 내공을 갖췄다는 표정도 엿보인다. 본사와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소셜 센서빌러티를 강조했다. 효과는 크다. 조 투치 회장을 비롯한 EMC 본사 의사 결정권자들은 김 사장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도 바로 이때문이란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상사에게 처세를 잘하는 사람이군…” 김 사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에겐 ‘소셜 센서빌러티‘는 아부가 아니라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어려운 전략이다. 이걸 못해 낙마하는 글로벌 기업 지사장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물론 소셜 센서빌러티가 리더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김 사장에게 소셜센서빌러티만 갖춘 사람은 중상위권 리더로 비춰진다. 최상급 리더가 되려면 또 하나의 ‘필살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패러다임을 한번에 바꿀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소셜 센서빌러티와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직관 그리고 비전 제시 능력을 갖추면 ,가히 ‘천하무적‘이다.

김 사장에게 “스스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직관을 갖췄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로망으로 남아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직관으로 문제를 해결할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에 그는 어떤 문제을 만나면 상황을 쪼개고 철저하게 분석한 뒤 결론을 내리는 스타일을 추구한다.


계속 소셜 센서빌러티 얘기다. 소셜 센서빌러티는 김 사장의 조직 관리 스타일과도 밀접한 함수관계다. 혹시 센서빌러티에 담긴 왠지 따뜻할 것 같은 느낌만 보고 김 사장이 가족같은 기업 문화를 만드는데 관심이 있을거라 봤다면 생각을 바꾸는게 좋을 것 같다. 김 사장이 추구하는 조직론에 가족 문화가 파고들 공간은 별로 없어 보인다.


조직 관리에 있어 김 사장은 다소 냉정한 유형으로 분류된다. 경영자로서 그는 직원들을 세심하게 배려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인정한다. 이게 단점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고칠 생각도 없는 듯 하다. 오히려 가끔은 남을 배려하지 않는게 가장 효율적일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솔직한 자기 평가가 아닐 수 없다. 빈말이라도 거룩한 얘기좀 하는게 나쁘지는 않을텐데…


“아랫사람을 다루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죠. 설득도 하고 빌기도 해야 하지만 눌러줄 필요도 있어요. 화를 내는 것도 경영의 한 방법입니다. 물론 화를 자주 내서는 안되죠. 그러나 가끔씩 화를 냄으로써 경고를 주는게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의 조직론은 철저하게 조직의 건강한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과 ‘사‘도 분명하게 구분된다. 좋은 사람이란 평가를 듣는 것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자신이 왜 한국EMC 사장으로 있느냐?란 질문에서 출발한다.

“장기적으로 회사가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해주는게 중요합니다. 제가 EMC에서 영원이 있을 것처럼 생각하면서 결정을 내려요. 그렇기 때문에 ‘사‘를 철저하게 배제합니다. 누군가를 평가할때도 그 사람의 능력과 업적 그리고 가능성만 본다는게 개인적인 철학입니다. 투명성도 중요하죠. 제가 내리는 결정은 구성원 모두가 그 과정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알면 안되는 것 말고는 다 공개하는게 맞다고 봐요.”

한국EMC에서 김경진이라는 인물은 사장으로서 김경진일 뿐이다. 사장 김경진이 인간 김경진을 대변할 수는 없다.

“저는 관찰자에요. 일하면서 자제력을 잃은적이 거의 없어요. 화내는 것도 연기하는 거에요.(웃음) 소셜 센서빌러티에서 제 자신의 본 모습은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리더는 조정자일 뿐입니다. 개인적인 모습은 일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들과 있을때 보여주는 거죠. 회사에서는 비즈니스 목표를 이루는 것만 고민합니다.”

‘철두철미‘라는 문구는 이럴때 쓰라고 나온것이지 싶다. 사회적 위치와 개인적인 성향을 물과 기름처럼 가르는게 쉽지는 않은 법인데, 그는 일을 하는데 있어 고도로 계산된 플레이를 즐기는(?)것 같다. 이메일을 쓸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구에 대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100번도 넘게 고민하고 쓴단다.

너무 냉정하게 비춰지는게 부담스럽지 않은지 물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먹이기 위해 닭을 잡았다고 쳐요. 닭 입장에서 보면 무서운 사람이지만, 아이에게는 닭을 먹여주는 따뜻한 엄마가 아닐까요?”

듣다보니 김경진 사장의 스타일은 앞으로도 안바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격동의 컴퓨팅 시장, 그리고 EMC의 변화

글로벌 IT시장이 다시 격변기에 들어섰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모든 것은 클라우드로 통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클라우드의 부상과 함께 업체간 역학 관계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 컴퓨팅을 지배해온 IBM과 HP는 물론 시스코시스템즈, 오라클과 같은 신흥강호들이 클라우드 컴퓨팅 시장에서 맹주를 자처하고 나섰다.

EMC도 그중 하나다. EMC는 시스코와의 전략적 제휴를 기반으로 클라우드 시대를 주도하는 강력한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청사진을 내걸었다. 스토리지 강자로만 머물지 않겠다는 것이다. 몇년전부터 EMC가 연쇄적인 인수합병(M&A) 레이스에 들어간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김경진 사장은 최근의 IT업계 상황을 수직 계열화 시대의 부활로 규정한다.

“IBM, HP같은 거대 IT기업들이 공격적인 M&A를 통해 제품부터 서비스까지 다하겠다고 나왔습니다. 한마디로 한 업체에서 다 사가라는거죠. 80년대말 사라졌던 수직 계열화가 부활하고 있는 겁니다.”

수직 계열화는 80년대까지 IT업계를 지배하는 코드였다. 독자적인 칩과 소프트웨어 그리고 네트워크 기술로 중무장하고 고객들에게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은 70년대까지 컴퓨팅 업계에서 필승카드로 통했다.

그러나 PC가 나오면서 수직 계열화는 과거의 유물이 됐다. 그리고 분야별로 최고의 솔루션을 골라쓰는 베스트 오브 브리드(Best of Breed) 시대가 열렸다.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SAP, 피플소프트, BEA시스템즈, 로터스 등은 전문성을 앞세워 고객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운영체제와 서버 프로세서도 전문업체들의 손에 주도권이 넘어갔다. 이후 분야별로 강자들이 공존하는 이른바 ‘군웅할거의 시대‘가 20년넘게 지속됐다.

그러나 요즘에는 다시 수직계열화가 주도권을 틀어쥐는 양상이다.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서버나 스토리지는 재료일 뿐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통합된 서비스만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IT기술이 이제 초성숙단계에 접어들었어요. 작은 혁신은 있겠지만 가상화 기반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IT자원도 마치 전기공급하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할 만큼, 기술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성숙기에 들어섰습니다. 큰 업체 입장에서 보면 외부 전문 업체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거에요. 혁신이 한창 일어날때는 직접 하면 리스크가 많이 따랐습니다. 직접 선보인 기술이, 대세가 되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죠. 그러나 혁신의 폭이 크지 않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직접하는데 따른 위험이 크지 않아요. 그러니까 대형 업체들이 M&A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겁니다.”

김경진 사장은 수직 계열화를 향한 흐름은 앞으로 10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시장에서 ‘마지막 물결‘이 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10년후에는 2~3개 업체만 남을 것이며 정리된 판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EMC도 ‘마지막 물결‘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런만큼, 마지막 전쟁의 결승에 오르고 싶어한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알죠. IBM이나 HP가 들으면 웃겟지만 10년전에 구글이 이렇게 될줄 누가 알았습니까? 게임은 아직 끝난게 아니에요. 2~3년안에 진검승부가 펼쳐질 겁니다.”

■ 화가를 꿈꾼 공고생 김경진

찬바람 풍기는 소셜 센서빌러티라는 말은 빼고 이제 인간 김경진에 대해 말할때가 된 것 같다. 그의 어린시절은 경제적으로 불우했다. 대학에 들어갈때까지 쭉 그랬다.

아버님이 중학교 1학년때 돌아가시다보니 먹을것을 걱정하며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다. 공부는 매우 잘했지만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에 들어가는 꿈을 꿀 처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학업에 대한 열정 만큼은 대단했던 것 같다. 그는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며 올라가지 못할 나무에 오르려 했다. 집안 형편과 상관없이 서울고등학교에 지원한 것.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지만 합격 통지서까지 받았다.


꿈의 유효기간은 거기까지였다. 붙었지만 입학금이 없었다. 주변에서 돈을 내줄 상황도 못됐다. 대신 그는 공업고등학교를 선택했다. 공고는 공부 잘하면 등록금 안내도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죠. 고등학교 졸업해서 돈을 버는게 최우선 목표였어요. 당시에는 정부 차원에서 전자 산업을 키울때였습니다. 취직이 잘될꺼 같아 전자과에 들어갔죠.”


공고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손재주가 있다보니, 전자회로나 진공관 만지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세계 기능 선수권 대회에 출전할 후보로도 뽑혔다. 재미도 있고, 학교에서도 밀어준다고 했으니 세계 대회에 나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나가서 상만 타면 대기업 취직은 보장됐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대회에 나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때인 것 같아요. 어느날 갑지가 평생을 기능인으로만 살 수 있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어요. 며칠을 고민했죠. 당시에는 형들도 제대를 해서 밥을 안굶어도 될 때였어요. 결국 대학을 가기로 결정했죠. 그랬더니 학교에서 난리가 난거에요. 저한테 투자한게 얼마인데 하면서 세계 대회 출전을 권유했어요. 제가 고집이 센가봐요. 뜻을 꺾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대책이 있는것도 아니었어요. 그전까지 대입 준비를 한것도 아니었고요. 3학년때 참고서 몇권 사놓고 공부를 시작했고, 항공대에 들어간 겁니다.”


김경진 사장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했다. 자아가 강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 고등학교 들어갈때도, 대학 들어갈때도 모든 것을 혼자 결정했다. 스스로 내린 결정에 후회는 없다. 결과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가 세계 기능 대회에 출전해서 상을 탔다면 지금의 한국EMC 사장 김경진은 없을지도 모른다. 유능한 기술자로 은퇴했거나 정년을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결정을 혼자서 내렸고 거기에 후회도 없지만 아쉬움이 생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막연하게나마 화가가 되는 것을 꿈꿨다. 그림 그리고 나무 깎고 조각하고 하는게 너무 좋았단다. 소질도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탁월한 손재주를 뽐낼 수 있었던 것도 미술에 대한 자질과 무관치 않다. 남들도 인정할 정도였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날, 그는 미술 선생님으로부터 호출을 받는다. 가서 들어보니 “도와줄테니까 미대에 가라“는 거였다. 솔직히 가고 싶었기에, 진지하게 고민했단다. 그렇지만 미대가 돈이 한두푼 들어가는 곳인가?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사실은 나중에 후회했어요. 제일 좋아하는게 그거였는데… 지금 성격같으면 갔을거에요. 대학가서 아르바이트하면 되는거죠. 그 당시엔 미대에 갈만큼 무자비한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던거같아요.(웃음)”

김경진 사장에게 성공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경제적 부담없이 죽을때까지 하는 것이다.


그의 향후 목표는 대단한게 아니다. 은퇴한 뒤 그림 그리고 조각을 하면서 살고 싶어한다. 명성이나 돈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저 어린시절의 꿈을 복원해보고 싶다는 바람일 뿐이다.


젊은이들을 상대로 소셜 센서빌러티를 가르쳐주는 교육도 하고 싶단다. 소셜 센서빌러티가 너무 약해 일을 그르치는 것을 너무 많이 봤다는 이유에서다. 소셜 센서빌러티만 있어도 한국의 젊은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지금까지 얼마의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은퇴 후 그림 그리고 조각하고 젊은이들에게 소셜 센서빌러티를 가르쳐주면서 살아도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을 만큼의 돈은 벌었을 것 같다. EMC 본사에서 부사장급이니 그 정도 월급은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경진 사장은 어느정도 성공한 삶에 가까워졌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2020년께, 김경진 사장과 전원 주택앞에서 소셜 센서빌러티나 IT 얘기가 아니라 사회와 인간, 그리고 예술을 놓고 차한잔 마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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